문화에서 “매력”이란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한다면서 교수가 한 명 뿐인 여학생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학생이 혼자니까 물어보는데, 바람둥이인 사람은 남자친구로 어때요?” 나는 수업이 끝나고 불편함을 전달했다. 그러자 하는 대답이 “수업을 재밌게 하기 위해서 였다”고, “그런 걸 불편해 하는 사람이 있는지 몰라서 했는데,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의 수업 중에는 그런 류의 질문은 하지 않겠다”고 답한다. 결국 자신은 잘못한 것이 아니고, 불편을 느끼는 특정 종류의 사람들의 문제로 만든 것이다.
수업 중 위의 질문에 이어서, “바람둥이 여성을 만나면 큰일 날 것 같은 사람이 있다. 광문 형제다”라는 말도 했었다. 난 그에 대해, “저는 메갈 입니다”라고 답했다.
메갈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겠다. 초창기 메갈리아 싸이트에 과격한 이들이 있던 것은 맞다. 그러나 메갈리아는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표현을 반대했으며, 과격한 이들을 걸러내고 거의 폐쇄된 상태였다. 그리고 메갈은 몇 개의 소규모 페북 그룹으로 남아 있었는데, 가장 큰 규모의 그룹은 미러링에도 공격성이 담길 수 있으니 반대할 정도로 과격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적으로 메갈이 대두된 시기는 이미 자정작용이 끝난 뒤로, 버려진 옛 싸이트의 글들로 메갈을 공격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의 메갈은 그들이 들이 밀었던 그 과격한 말들을 함께 반대했던 이들이며, 다만 여전히 사회의 잘못된 문제에 대해서 입을 다물지 않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메갈”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마치 “빨갱이”와 같이 낙인을 찍는 이들의 실수나 폭력성은 용납되고, 낙인이 찍힌 사람이 무조건적인 죄인이 되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원인은 그 낙인찍는 세력인데, 오히려 낙인찍힌 이들이 원인이자 폭력분자가 되었다.
“퀴어”라는 말도 처음엔 그랬었다. 그러나 이제 퀴어는 긍정적 의미로 쓰인다. 거기엔 연대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래. 우리 괴짜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 나에게는 “메갈”이 그렇다. 당사자성에 있어 남성이 페미니스트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의 여지가 있다. 그렇기에 나에게 연대의 의미인 “메갈”이라는 말은 좀 더 쉽게 쓸 수 있는 말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나와 같은 특정한 예민한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감한 폭력이 방치되어 왔고, 방치될 수 있는 것이 성별 갈등의 진짜 원인이다. 갈등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구조가 만든 것이다. 그 침묵이 만든 것이다. “연대”는 아름다운 박수와 훈훈한 인정을 받는 시혜적인 자리가 아니다. 함께 괴짜로 고립되고 불안하며 위험해 지는 자리다. 다만 “우리”가 되어 함께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자리다. 우리는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을 뿐이다. 다만 그래서 더 이상 가려지지 않기에, 이제 그동안 배우지 않아도 됐던 폭력의 권력이 감춰지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다.
다 알겠는데 좀 친절하게 말해야 전달되지 않겠냐고? 그러면 나도 묻겠다. 그 친절함을 아는 당신은 왜 침묵하고 말하지 않는가? 당신에게 불편함을 느끼면 갑자기 반대로 왜 불편함을 느끼는 내 탓이 되는가? 왜 나에게는 그렇게 불친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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