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이 심한 옷을 입었으니 성폭행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을 반박하는 남성들 중에는 동시에 속에서 뭔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출이 심한 옷을 보며 성관계에 대한 환상과 연결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이는 오해입니다. 성욕이 아닙니다. 폭행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는 욕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차별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노출이 심한 옷은 성욕을 자극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욕구라는 것이 좋다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분명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 노출에 의한 자극이 성관계에 대한 욕구까지 이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서로가 원하여 이뤄지는 성관계는 서로의 유대감을 강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성욕은 겅강한 것입니다. 그러나 폭행은 그것과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것은 타인을 짓밟는 범죄입니다.
노출이 심한 옷을 보면서 미치도록 섹스가 하고 싶어 질 수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른 것으로, 자연스럽게 그런 감정을 갖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그에게는 건강한 일입니다.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과 폭행은 그것과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어떻게 성욕과 폭행이 같아질 수 있습니까. 그런 인식이 허용될 수 있는 것은, 차별의식을 가진 사람이 정당화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가 차별을 용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좀 더 간단한 상황으로 생각해봅시다. 노출이 심한 옷을 훑어보게 되는 남자들이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건 건강한 것입니다. 단순한 문제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빤히 훑어보는 건 굉장히 당황스럽고 불쾌할 수 있는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훑어보는 것이 왜 더러운 행동이 됩니까. 그건 상대를 나와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고 배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장, 한복, 멋지게 입은 옷, 노출이 심한 옷 등은 각자 복합적으로 각각의 다른 감정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정장을 입은 사람, 한복을 입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듯,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라면, 상대가 그것을 혼동할까요? 정장이나 한복을 감상한다고해도 너무 빤히 훑으면, 상대는 불쾌감을 느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선에서 아름다움을 감상합니다.
그러나 여성의 노출을 바라보는 남자들은 그러한 동등한 사람 간에 이뤄지는 선을 넘곤 합니다. 그리고는 그 죄의 원인을 여성에게 둡니다. "네가 처다보라고 그렇게 입은 것 아니냐"고 하지요. 
우리는 이 말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여기서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이 남성의 성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절대 성욕이 아닙니다. 그가 저지르는 무례를 정당화 하는 것일 뿐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기 위해 상대보다 우위에 서려는 행위를 정당화 하는 것일 뿐입니다. 성욕을 정당화 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성욕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차별이 허용되는 사회 안에서 아름다운 욕구가 오히려 더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성폭행은 성욕과 상관없는 것입니다. 성폭행은 단지 여성차별일 뿐입니다. 차별이 아름다운 욕구마저 오히려 뒤틀린 것으로 만들고 혐오스런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성욕이 비밀스러운 것, 스릴 있는 것, 남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 되어버리는 건 차별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남자들이 강자, 여성들이 약자인 사회입니다. 남자들의 성욕은 건강한 것이지만, 차별의식이 그 아름다움을 뒤틀어버립니다. 남자들은 상대방을 동등하게 대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휘두르려 합니다. 그 안에서 건강한 욕구도 뒤틀리게 됩니다. 명백히 가해자이며, 명백히 피해자 입니다. 차별의식을 버리면 오히려 남성들도 뒤틀린 죄의식과 쾌락의 고리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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