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확인하면서 살게된다.
< 1 >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나라인가? 침묵으로 찬성이 되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나라인가?
< 2 >
부패한 개발도상국이었다면, 국민들에게 돈도 앎도 자존감도 허락되지 않는 나라였다면, 이민을 갈 것인가? 해방을 위해 싸울 것인가?
< 3 >
독립운동가를 테러리스트로, 국민주권을 외치면 빨강이로 형틀을 씌워왔다. 이제 사람이니 함께 살자외치면 테러리스트 빨갱이가 된다. 부정한 세력이 정의하는 형틀을 신경쓰며 두려워할 것인가? 그저 우리는 우리가 될 것인가?
< 4 >
테러리스트에겐 사형을, 빨갱이에겐 집단 학살을 자행해왔다. 이젠 마녀사냥과 낙인을 통한 사회적 고문과 학살을 사용하는 시대다. 해방을 외치는 사람에겐 국민이 적으로 돌아선다. 모두의 적이 되는 게 무서운가? 내가 적이 되는 게 무서운가?
< 5 >
모두가 목숨을 거는 건 선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해방이 확실치 않더라도, 미래가 보이지 읺더라도 목숨을 버리는 사람은 언제나 있어왔다.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사람도 목숨을 버리지 않는 사람도 모두 필요하다. 난 어느 쪽의 사람인가?
< 6 >
백성의 고혈을 짜낸다. 백성들은 억울함을 외친다. 도움 받을 때는 감사해 하다가도, 도움 준 그 사람을 사형틀에 메달것이다. 그 백성을 욕할 것인가? 백성이 그렇게까지 되도록 만들어버린 그것을 욕할 것인가?
어느 선에 있는 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혼동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우리를 그렇게까지 만드는 그것으로 부터, 해방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
아직은 백성을 욕하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다. 그게 나의 선이다.
그러나 단지 아직은일 뿐이다. 선을 혼동하지 않으며 변명하지 않겠다. 다만 선을 넘어가겠다.
내가 보기에 그 마지막 선을 넘는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러나 그 선을 넘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되지 않는다. 동지 혹은 공동체 혹은 배움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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