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들은 근처의 넓은 논을 두고는 민통선 안에서만 살아있다. 그러나 논은 좀 더 돈이 되는 인삼밭과 과수원으로 바뀌고 있으며 두루미들은 점점 줄어간다. 작아진 겨울의 논에서 작게 보이는 그들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빙하기의 시작에서 공룡의 마지막 무리가, 내리는 눈을 그저 맞으며 서있는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멸종의 시작. 그 역사를 눈 앞에 마주한다는 것. 그 신비로운 감각은, 그리고 그 감각을 바라보고 있는 이 시간은, 그리고 눈 앞의 공룡들은, 모두 아름다웠다. 그렇게 아름답다는 것, 그것이 왜인지 조금 울듯한 기분이 되게 한다.

그러나 상상해 보았다. 다시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다. 생명의 잎들은 자라나고, 모든 것들이 다시 돌아온다. 공룡의 무리는 활기를 띄고 이제 우리 주변에서 무럭무럭 자라가고 있다. 아. 그 상상이 너무나 기뻤다. 그 세계는 분명 눈 앞의 이 아름다움보다도 훨씬 압도적이며, 신비스럽고, 무엇보다도 신이 날 것이다. 

문명은 꿈을 꾼다. 그래서 우리를 달리는 기차에 태워간다. 그러나 문명은 아이들의 오감과 마음이 결국 무엇을 느끼게 할 것인가. 가슴의 생명은 두근 거릴 수 있는가. 

문명도 꿈을 꾼다. 그것이 나쁘겠는가. 그러나 저기 벌판에 있는 세계의 꿈의 조각이, 돌아오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손익을 계산하는 여러 언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셀 수 없는 것이 있다. 문명의 광고는 그 언어만이 진짜라 말한다. 아니다. 꿈도 실재이다. 그리고 눈 앞의 두루미들은 하나의 꿈의 조각이다. 꿈은 우리의 마음이 몸이 느낄 수 있게 하고, 두근거리게 한다. 

우리가 지킨다고? 우리가 감히 무엇을 지킨다는 말인가? 지키는가 아닌가 하는 것은 손익의 언어일 뿐이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꿈을 믿고 간직하는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공간과 그의 살아가는 느낌을 나누고, 그 두근거림을 나누고, 그래서 함께 세계의 꿈을 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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