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장은 맞는 문장이다. 왜냐하면 생물학적으로, 인간은 동성애를 위해 설계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보노보와 침팬지 사이에서 나타나는 동성 간 성관계의 비율은 굉장히 다르다.
성별의 구분이 있는 종에서 동성 간 성관계는 보편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비율이나 동성 배우자의 육아 비율 등은 종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이러한 특성들은 각 종의 생존에 있어 어떤 기능을 하는 일종의 진화 과정이다.
그런 의미로 동성애는 각 종에 따른 생물학적인 설계 속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구분되는(하지만 스펙트럼 안에서 분리되지는 않는) 성별을 가진 경우에, 이성애 역시 각 종에 따른 생물학적인 설계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이 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외견 상 이 질문은 앞 서 설명한 생물학적 이성애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 질문이 놓여 있는 맥락은 그렇지만은 않다. 저 질문이 사회의 맥락 속에서 비추고 있는 주장은 이성애 중심주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상당히 동의하지 않음'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느 정도 동의함' 역시 중요한 선택지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동성애 혐오가 심한 곳에서도 동성애는 당연히 나타나는 인간의 성지향인 것처럼, 단지 사회적 학습이라고만 환원하는 것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모든 성지향이나 성정체성은 자유로운 것이기도 한 동시에 자유롭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비남성 혹은 비여성에 대한 정체성들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경우도 있다. 단순히 개인의 마음가짐 같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호르몬은 누군가에겐 비남성 혹은 비여성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호르몬과 어떤 젠더가 완전히 상관없다는 것만이 유일한 해방은 아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사회적 구분은, 이분법의 의미에서는 당연히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헤테로 이외에도 다양한 여성들과 다양한 남성들이, 또한 젠더퀴어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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