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벌레 들끓는다고 뭐라고 하는 상황에서)이쯤되면... 자연농이고 유기농이고 모르는 일이고 그냥 농약을 쳐줘야 마을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찌해야 할까?
사실 근대화/공업화 되면서 제초제니, 유전자 변형된 씨앗이니, 화학비료 등이 등장하기 전 우리네 땅에서 지었던 농사야말로 유기농법 농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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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불쌍하다.
그런데 마음을 살피는 불교에서는 식물과 동물을 먹는 일에 왜 차이를 두었겠는가?

근대는 서구적 이분법적 개체중심적 사고를 한다.
따라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포식과 피식을 단순히 동일한 것으로 환원시켜 버린다.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비인간 동물, 인간과 식물 사이의 관계적인 것이다. 인간과 식물, 인간과 비인간과의 진화적 관계는 마음으로 표현된다. 마음은 몸과 생활의 또 다른 형태다.
초식 동물, 육식 동물처럼, 마음이 보여주는 관계가 인간을 정의한다.
이는 식물-인간-자연으로 확장된다. 전통 농업은 또한 생물다양성에 기여해오기도 했다.

갈대밭, 미나리꽝처럼 동물과 달리 식물은 같은 종으로 빼곡히 구성된 영역을 가지는 존재다.
여기에서 공장식 농업/관행농이란 오직 당장의 생산성만을 목적으로 본래 모습을 왜곡시키고, 더 큰 환경파괴를 불러오는 일이다.

여기에서 다시 육식의 문제가 끼어든다.
이미 자연농으로 전세계 인구가 먹고도 남을 식량 생산이 가능하다. 육식을 위한 사료를 기르는 일에 10배 이상의 땅이 필요하다.
육식만 줄여도 식물을 괴롭히고 지구를 파괴하는 일에서 벗어나, 식물과의 건강한 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사실 육식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비건들에게도 '맛'이라는 개념에 변화가 필요하다.
커피나 초콜릿 등이 아니라 가능한 로컬 지향의 관계성이, 맛이란 개념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관계성이 분리된 채 개인적 신념만으로 충족되어 단절되는 일들이, 근대적인 상황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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