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죽음의 이분법이 있는 게 아니다.
"생명을 포장하며 죽음을 지우는 일"과
"죽음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 있다.

전자는 미디어에서 광고 되는 멋진 일상이다.
경제 세계화의 약탈을 통해 얻은 쾌락과 평화의 높아짐이다.
그 실상은 불안증이며, 그래서 뭔가의 가치니 진리니 하는 것들을 추구하며 진실을 덮는다.
"부패"만이 확장되어 간다.

후자에서는 비천한 나를 만난다.
그 비천한 나를 위해 죽은 햇빛, 바람, 물, 생명, 노동의 피땀, 파괴와 오염을 만난다.
그런데 그 죽음들의 가치보다 못한 부패한 살덩이일 뿐인 나를 정말 잘 들여다 보고 있으면, 그 죽음들이 내 모든 살덩이 속에서 말해준다.
그런 내가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그래서 내 생명은 이제, 단지 살아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는 무언가로 고정된 것도 아니다.
내 죽음의 날로 완성 되는 전존재이며, 그 "나"라는 생명이자 죽음인 세상의 한 "관계"다.

생각해보라. 그 사랑이 인격을 가진 세상을.
인간에게는 사랑의 인격으로 온 우주를 덮는다.
개에게는 개로, 나무에게는 나무로 그러할 것이다.
그러니 그건 높아지는 것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계속 그렇게 죽는 다는 거다. 부활은 곧 그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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