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반페미 집회가 있었단다. 너무나 역겨운 일들이 벌어졌다.
그러나 어쩌면 사실, 그들이 오히려 이 사회의 기본값에 가깝다.
여성은 동물로, 동물이 여성으로 교환되고, 생은 폭행으로서야 성립이 가능하다.
세월호보다 섹스의 대상화가 더 선택받는 그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
너무나 큰 죄악 앞에서 분노로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으니, 나는 여기서 아픔이라는 투쟁을 떠올려 보려고 한다. 그 슬픔의 아픔을.
저기 저 머리의 주인의 삶은 어땠는가?
모든 집돼지들의 삶과 동일하게,
죽음보다 불경한 학대 속에 비육해 지다가,
2차 성징 이전 초등학생 정도일때 도살 당해,
저기 머리만이 덩그러니.
다시 망치에 짓이겨졌다.
거기에 있는 아픔은 그런 종류의 것이다.
이 사회에서의 여성이 무엇인지 역시 그런 아픔을 알 때 더 선명해진다.
그래. 내가 유기해 버린 내가, 소외된 이들이, 무력한 이들이, 우리가, 생명이, 운다. 저기 손에 들려 흔들린다.
그게 어찌 개인의 가치판단 같은 것이겠는가.
그건 그보다 더 근원적인 아픔이다.
그들이 너무 비열한 짓으로 웃고 조롱해서 화나는 것인가?
그것도 있겠지만, 그 안에 있는 것은 사실 그보더 더 깊다.
사실은 이미 사회에서 우릴 그렇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 아픔이 투영되기에 우리 속이 그렇게 다 무너지고 있었다.
거기의 아픔으로 돌아가자.
그건 얼마나 큰 감정인가.
그 근원의 애도가 눈물로 흘려내오는 분노는
증오와는 전혀 다른 것임을 거기에서 안다.
그곳에서 나는 말할 수 있다.
당신들은 나의 머리를 거기 던졌습니다.
당신들의 그 미소들에 눈물이 멈추지 않습니다.
나는 너무나 많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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