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한민국, 공기 중으로 전염되는 이 감염병에 의해 매일 72.4명씩의 확진자가, 매일 4.9명씩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런 감염과 사망이 365일 동안 매일 일어났다. 오늘 감염 72명, 사망 5명이면, 내일은 감염 144명, 사망 10명, 모레는 감염 216명, 사망 15명이다.
그 질병의 이름은 결핵이다. 매년 소폭의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비슷한 수준이다. 당연히 작년에도. 올해도.
그러나 당사자들이 대상화되어서도 안되고, 축소되거나 과장되어서도 안되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폐렴은 사망원인 3위이다. 2018년엔 하루 63.78명이 사망했다. 확진자수가 아니라 사망자수가 그렇다. 심지어 폐렴은 특정 감염인 없이도 발생한다.
오늘 64명, 내일 128명, 모래 192명, 확진자가 아닌 사망자 자체가 그렇게 늘어난다. 폐렴에 의한 사망은 지난 10년간 300% 이상 증가했다. 그 확산 속도는 무시무시하다.
마찬가지다. 나와 다른 존재로 배제하는 일은, 시야를 좁히고 오히려 취약한 이들을 분리하게 만든다. 거기에서 더 많은 비극이 시작될 것이다.
일주일에 5일 이상, 하루 8시간 이상을 밀폐된 공간에 다수의 사람들을 밀집시켜 놓고, 회의도 종종 이뤄지게 만드는 곳이 있다. 회사다.
출근 지하철은 어떤가? 그 좁은 공간에 여전히 공중부양 수준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고, 당연히 단순히 악수를 넘어 밀착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도 안하고 있고, 심지어 만나는 대부분이 새로운 얼굴들이다!
생존을 위해 거리에 나와 먹거리를 다수에게 노출시키는 노점상은 어떤가? 혹시 이미지가 위생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면, 음식점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노점상은 백화점, 마트의 상황과 유사할 수 있다.
직면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는 두려움 속에 있는 거다.
***
서로 간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곳은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에서 더 많은 전파가 일어날 수는 있다. 신천지의 문제, 단지 종교 모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들이 없어지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을 막으면, 신천지를 막으면, 대구를 봉쇄하면 그때부터 나아지는 문제가 아니다. 청정지역과 아닌 지역이 있고 거기가 뚫린 게 아니다. 그들도 동등한 지역 감염의 피해자이며 어디서나 조건은 다르지 않다.
모부님은 TV를 보며 중국인 때문이다 교회 때문이다 대화 나눈다. 중국인이 없는지 교회를 안가는지 살피며 자기 가족의 안전을 기원한다. 회사, 지하철, 마트, 일상의 공포를 중국인, 신천지, 대구에 대한 어떤 믿음을 가지는 일을 통해 해소하려 한다. 그렇게 불안과 공포를 배제로 해소하려 하지만 더욱 불어갈 뿐이다.
단지 코로나19가 아니다. 아픈 사람에 대한 사회적인 지지대를 꿈꾸지 않는다. 개인들의 문제로 만든다. 배제하고 그래서 더욱 불안의 상황이 만들어진다.
국가와 사회시스템을 통한 의료의 보장, 질병에 대한 유급 보상이 있다면 오히려 질병은 다루지 쉬워질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적 신념 속에서 서로를 배제하고 의료비는 높아져 간다.
우리가 정말 코로나를 조심하고 있는 것인가?
솔직해 지자. 우리는 지금 고통당하는 그 당사자들, 숫자나 바이러스와 별반 다르지 않은 태도로, 나와 다름을 발견해서 그렇기에 그들은 그럴만하다고, 정말 대상화하고 있지 않은가?
우린 두렵다. 두려워서 혐오를 만들어가고, 더 큰 두려움으로 들어간다. 조심하는 일과 그런 일들은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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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직면하는 힘은 대상화를 극복할 수 있는 나의 지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이들과의 평화를 통해서 올 것이라 믿는다.
우리가 말해야 하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이다. 그리고 배제가 쉬운 존재들, 홈리스, 사회적 약자들의 삶과 죽음의 사회적 책임이다.
적어도 “시국이 이러니까 조심하자”라는 말보다 그런 말들이 더 많이 발화가 되도록 하는 역할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해보면 어떤가?
바로 이런 시국이기에 의료의 공공성, 사회적 지지와 연대, 약자들의 소외에 대한 담론이 더욱 형성될 수 있게 하는 것, 당장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발화라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보는 것,
그 일은 배제와 혐오를 줄여서, 질병에 대한 진실의 문제를 직시하도록 이끌며, 결국 감염도 줄어들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당장에도 우리가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건강권’만이 아니라 ‘질병권’도 있어야 한다
표정이 된 마스크 자국 ‘살리고 싶다, 살고 싶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29297.html
코로나19로 급식·상담 중단, 쪽방촌 직격탄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5328
'방역도 양극화' 한달새 2배이상 뛴 마스크값 빈곤층에 큰 부담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2002047458Y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혐오의 폭력성과 공포
https://www.vop.co.kr/A000014696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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