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 거리는 장면이다. 참 행복한 감정이다.

서구문명사회의 문제는 전체 맥락을 제거하는 데 있다.
지금 이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이곳으로 오는가?
한우라고 하더라도 사료는 약소국의 삶터와 숲을 제거하고 만들어진다. 그들의 물도 우리가 빼앗고 있는 거다. 그리고 잔인하게 생산되는 공장식 축산, 그 안에 소비되어야 하는 화석에너지, 이미 이 땅이 감당할 수 있는 양의 몇 배를 넘어선 축산분료 등 수 많은 약탈과 파괴가 벌어진다. 약자에 대한 약탈, 다음 세대에 주어질 것에 대한 약탈이다.

미식은 좋은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할 수 있는 것과 해도 되는 것은 다르다.
해도 되는 문제를 혼동할 때, 우리의 선물은 우리의 폭력이 될 뿐이다.

마지막 예배, 참 감동적 장면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회적 소수자의 비율은 어떻게 되는가? 홈리스,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의 사회적 비율과 이곳의 비율은 어떤가?
적어도 예수의 교회라는 곳은 사회적 약자들의 비율이 사회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야 정상이리라. 적어도 비율이 어떻더라도 그들이 중심이 되는 방향성이 '우리'인 것이 예수의 교회였다.
나도 사실 이곳의 비율이 어찌 되는지 모른다. 그래도 적어도 구조적 희생자가 중심이 되는 곳에서는 비율이 어떻든 그 중심이 선명하고 어떻게든 감춰지지 않는다.
생태환경 문제에 있어서 지구, 곧 땅을 풍성히 만드는 이들인가? 아니면 소유하는 이들인가? 그것도 사실 그 중심이 선명한 곳이라면 감춰져 있지 않다.

감동이 부정되고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은 틀린 일이다. 그러나 그 감동의 중심이 누구인지가 선명하지 못한 것이 가장 틀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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