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 계정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한 페북 계정이 있습니다. 컨셉 계정이든 아니든 가스라이팅의 요소가 있어 사실관계에 맞는 정리를 통해 이를 정리해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상황>
1. 그동안 각종 성소수자 혐오 발언과 퍼레이드 차량 저지 등을 선동한 사람이 있다.
2. 최근 들어 갑자기 반성을 한다며 새사람이 되었으니 친구를 맺자고 한다.
3. 사과문이라고 하면서 ‘게이와 트렌스젠더 친구들, 이제 친해지자’는 내용의 글을 올린다.
4. 이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의 댓글들이 달리자 그 댓글을 캡처와 함께 자살을 암시하는 글을 올린다.
(1) 사과에 대해 너무 공격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그동안 저질렀던 잘못과 고통이 있는데, 일방적으로 자기는 바뀌었다고 말하고, 그가 이전에 관계 맺던 사람들과 멀어졌다고 해서, 그의 가해 행위의 피해자들이 그와 친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사과는 피해자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사과했으니 착하게 받아줘야 한다는 건 그림의 equality일 수 있으나, justice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올린 사과문만으로 그가 행했던 잘못이 사라질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피해자 입장의 사과문을 올렸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피해자 입장의 사과문은 의무적인 것이며, 피해자 입장의 사과문과 함께 그의 혐오폭력이 얼마나 악랄했던 것인지가 제대로 정리되어야, 그의 잘못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그제야 앞으로의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2) 그가 변했다고 해서 ‘게이와 트렌스젠더 친구들’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대상화한 표현이며, 그가 잘 모르고,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대상화인 것은 맞습니다. 이미 대상화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잘 모르는 한 사람에게 다수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는 태도는 또 다시 justice가 아닌 equality일 뿐입니다. 잘 몰라도 넘어갈 수 있는 것 자체가 혐오구조입니다. 그는 다수 속 개인이 아니라, 여전히 소수자들 앞에서 ‘혐오의 다수성’을 안전한 자리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의 표현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그리고 그에 대해 불쾌함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정당한 일인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그가 이후에라도 관계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3) 그의 자살 발언에 대해 그리 큰 반응이 없는 것은 인격적으로 부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인들의 죽음과 평생의 자살충동을 안고 생존해 가야 하는 이들은, 자살발언에 대해 예민함과 무감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그의 자살발언과는 별도로 그가 한 잘못을 없었던 것처럼 만드는 구조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예민한 자살이라는 주제에 댓글 캡처를 올리는 것은 그가 잘못한 일이 맞습니다. 자살 발언 앞에 잘못을 지적하는 태도를 비인간적 냉혈로 분석하는 것은 equality 입니다. 혐오폭력 속에서 생존하며 누구보다 자살에 대해 예민함을 느낄 수 있는 이가 왜 그런 지적을 하게 되는 것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게 justice입니다.
(4) 혹시 그가 정말 자살을 하더라도 그것은 성소수자들 때문이 아닙니다. 그 역시도 또 다른 성소수자 혐오의 피해자입니다. 받아주지 않은 성소수자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혐오의 사회가 그 죽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방치된 죽음이 미안하다면 성소수자 혐오에 대항하는 것으로 그 죽음을 연대해 갈 수 있습니다.
'평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개의 폭력 (0) | 2019.06.19 |
---|---|
인류의 퇴보와 낙하 (0) | 2019.03.14 |
두 개의 감동 (0) | 2018.12.30 |
과민반응과 가해 (0) | 2018.11.06 |
사랑한다면 연대한다 (카드뉴스) (0) | 2018.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