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상식이 통하고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보수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진보는 보수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야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수가 진보보다 좀 더 많은 상태가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다만 진보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인지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보수는 필연적으로 덩치를 맡고 있으며 유지의 역할을 한다. 때문에 변화하는 세상에서 답을 제시하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마치 법이란 것도 사실은 고정불변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인 것처럼, 보수 역시도 시대에 맞춰 새로운 보수로 변한다. 그러나 법은 수정되며 천천히 변해가듯 새로운 보수도 그러하다.
진보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진보가 새로운 보수의 견인에 어떤 역할을 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실제로 보수를 바꾸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보수를 바꿀 수 있는 건 새로운 보수 자체다.
진보의 역할은 거기에 있지 않다.
진보의 역할은 갈등자체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였을 때 진보의 역할에 대해 오해를 할 수 밖에 없다.
먼저 가서 보는 것이 진보이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먼저 본다. 새로운 보수는 그 뒤를 따라가며 유지의 역할을 한다.
진보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것에 답하지 않는 낡은 보수와 다가올 새로운 보수가 갈라진다.
낡은 보수와 새로운 보수는 힘싸움이다. 그 힘싸움이 보수에서의 언어다.
누가 새로운 보수인가를 판별하는 것이 진보의 역할은 아니다. 판별은 힘싸움이며 그것은 보수가 할 일이다.
진보의 역할은 먼저 보는 것이다. 진보에겐 특정한 적이 상정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선지자로서 세상으로 외친다.
이겨나가며 수정해가는 것이 보수이며, 도달할 곳을 선포하고 기다리는 게 진보다.
심판은 진보의 역할이 아니다. 다만 진보가 진보로써 자리잡을 때, 마땅히 찾아올 심판이 도래한다.
극단적으로 보자면, 힘싸움으로 진보를 없에거나 포함시키려 할 때, 보수라는 것도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 둘 다 잘한다는 것은 완전체가 아니다. 심장으로만 되어있는 생명체는 더 이상 생명일 수 없다.
다만 보수는 스스로 모든 것을 잘하는 존재라고 인식하고 기능하며, 진보는 그 모든 것에서 옳은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며 기능한다.
진보는 보수의 언어로 설명되어지지 않는다. 진보는 보수에 대항하는 것 아니다. 다만 옳은 것을 보고 외치는 것이다.
보수의 눈으로 진보를 평가하거나 진보의 눈으로 보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보수나 진보 중에 옳고 그른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는 보수이면 되고, 진보는 진보이면 된다.
'공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상과 해석-내려놓기와 바라보기 (0) | 2017.05.28 |
---|---|
회개 투쟁 (0) | 2017.05.24 |
법의 유동성 (0) | 2017.04.29 |
시간 생명 (0) | 2017.04.21 |
공돈 15만원이 생겼다 (0) | 2017.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