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합니다.
"대안이 있는 비판이 건강하다."
우리나라의 인종차별을 생각해봅시다. 대안을 함께 말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안 없는 비판은 사람들의 힘을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인종차별의 희생자들은 정신병약을 먹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나만 괜찮은 상황에서 정말 절실히 대안이 찾아질까요?
불편해도, 힘이 빠져도, 우리 역시도 우울증약을 먹을 정도로, 그 눈물에 참여해야 정말 절실히 대안을 찾게 될 것입니다.
혐오의 대안은 혐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말하면, 혐오를 행하는 측이 혐오를 하지 않을 대안을 얘기하라고 합니다. 대안 없이 힘을 빼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위와 아래를 분리하고 있는 것임을 모르게 됩니다.
편한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래. 문제지. 불쌍하지." 그러면서 "대안을 생각해보자."는 말로 지금의 죄책감을 덜어냅니다.
아니요. 함께 내려가서 함께 올라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답이 어려울 수록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이야기 하는 일은 멋진 일입니다.
고난이 될 정도까지는, 불편함이 될 때 까지는, 잘못 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이겨내고 답을 고민하고 발견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약해지는 것은 약한 사람들과 분리된 계층이 되어서, "계층은 없다"고 말하게 될 때입니다.
불편하지 않은데 답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건 거짓입니다.
그리고 자기 분노, 인정 욕구도 비판을 나쁜 것으로 만들어 소용없어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당당하게, 인간답게, 불편하고 내려갑시다.
"대안이 있는 비판이 건강하다."
우리나라의 인종차별을 생각해봅시다. 대안을 함께 말하기 힘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대안 없는 비판은 사람들의 힘을 빠지게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인종차별의 희생자들은 정신병약을 먹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고통 속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인데도 나만 괜찮은 상황에서 정말 절실히 대안이 찾아질까요?
불편해도, 힘이 빠져도, 우리 역시도 우울증약을 먹을 정도로, 그 눈물에 참여해야 정말 절실히 대안을 찾게 될 것입니다.
혐오의 대안은 혐오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말하면, 혐오를 행하는 측이 혐오를 하지 않을 대안을 얘기하라고 합니다. 대안 없이 힘을 빼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위와 아래를 분리하고 있는 것임을 모르게 됩니다.
편한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그래. 문제지. 불쌍하지." 그러면서 "대안을 생각해보자."는 말로 지금의 죄책감을 덜어냅니다.
아니요. 함께 내려가서 함께 올라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답이 어려울 수록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이야기 하는 일은 멋진 일입니다.
고난이 될 정도까지는, 불편함이 될 때 까지는, 잘못 된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포기하지 마세요.
우리는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이겨내고 답을 고민하고 발견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약해지는 것은 약한 사람들과 분리된 계층이 되어서, "계층은 없다"고 말하게 될 때입니다.
불편하지 않은데 답을 적극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건 거짓입니다.
그리고 자기 분노, 인정 욕구도 비판을 나쁜 것으로 만들어 소용없어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당당하게, 인간답게, 불편하고 내려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