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체에 대한 개념은 지독히 왜곡되어 있다. 개체의 한 현상은 분명 단절된 하나의 단위, 곧 우리가 익숙한 개체의 개념이다. 그것을 여기에선 '지금여기의 개체'라고 표현하겠다.

그런데 나라는 개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중에 내가 창조한 것이 있는가? 그것은 언제나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온다. 내가 아닌 물질에서 온다. 고유한 나라는 관계 속으로 오는데, 그 관계 역시 내가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나를 구성한다.

자아도 그러하다. 고정된 영원 불멸한 자아는 없다. 나의 자아는 나의 자아가 아닌 것만으로 구성된다. 지금여기의 하나의 현상이자 단위로서 개체로서의 자아가 있다면, 관계로서의 자아가 있다.

곧 개체는 지금여기의 개체와 관계적 개체로 이루어진 관계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단절된 하나의 단위는 지금여기라는 현상이며, 사람들이 인식하는 나라는 것도 '지금여기의 나'다. 개체를 구성하는 한 현상이며 하나의 단위로, 그것은 나를 구성하는 일부일 뿐이다. 내가 아닌 것으로 구성되는 관계적이고 과정적인 현상처럼, 나라는 것에서도 관계적 나가 존재한다. 그런 것을 여기에선 '관계적 개체'라고 표현하겠다.

 

위계적 배제의 문명에서는 관계적 나를 특별히 도덕적인 것, 다시말해 자연스럽지 못한 예외적인 보물인 것처럼 꾸민다. 이타심 같은 것 말이다.

그 문명 아래에선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낄 '관계적 나'에 대한 경험은 박탈당하고, '나'라는 개념은 단절된 개념 속에만 갇히고 인식 된다.

그것이 개체주의다. 이 개체주의는 절대 중립적인 것,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위계적 배제에 근거하는 종교적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천동설과 지구평편설이 객관적인 것이라 하고, 지동설을 주장하는 이들을 신성모독으로 살해하는 것과 같은 종교적인 것이다.

이런 개체주의는 쉽게 관계적 개체라는 인식을 지운다. 따라서 개체는 쾌고감수성과 같은 것으로 굉장히 납작해진다.

 

그렇다면 관계적 개체는 지금여기의 개체를 지우는가? 오히려 반대다. 관계 속에서 지금여기는 영원 속으로 해방된다. 과정 속에서 그것은 다시 반복될 수 없는 고유한 것으로서 그 하나의 의미는 대체될 수 없고, 거기서의 고통 역시 도구화 될 수 없다.

예를 들면 1초 전의 나는 더이상 내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고통은 남의 것인가? 그럴 수 없다. 나라는 과정 속에서 그 고통을 이어받은 것이 지금여기의 나다. 지금 내가 용서했다고 과거의 그 고통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그 고통을 이어받을 때에야, 다시말해 과정 속에서 인식될 때에야, 고통은 도구화 되지 않고, 고유하며, 바로 지금여기의 생명으로 세상과 소통된다. 1초 전은 대체 될 수 없는 영원이 되어 세상에서 제거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시간적 의미의 내가 있다면, 공간적 의미의 내가 있다. 다시말해 관계적 나다. 예를 들자면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이 그러하다. 1초 전의 나는 지금여기의 내가 아니듯, 사랑하는 이는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와 나의 관계 속에서 또한 '나'다. '관계적 나'다. 관계 속에서 이어받아 지금여기의 생명으로 세상과 소통된다. 그것이 애도다.

이 애도는 그를 지우지도 도구화 하지도 않는다. 오직 그때에만 나를 지우지도 도구화하지도 않는다. 과정 속에서 드디어 그가 영원으로 해방된다. 그것은 내가 아닌 단백질이 나 가체가 되는 것과 같이, 곧 나의 삶, 나 그 자체다.

 

개체주의 안에서 우리는 관계적 자아, 관계적 나, 관계적 개체에 대한 경험이 극단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제한되어 있을 뿐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개체주의 안에서 쾌고감수성을 말하는 이들이야말로 결국 자신들의 느낌을 소비하고 소유할 뿐이다. 결국 고통은 도구화된다.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나도 그도 단절되고 제거되어, 결국 문명이라는 종교만 남는다.

관계적 개체는 지금여기의 개체를 지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도구화에 맞서는 것이다. 오히려 관계적 개체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금여기의 개체를 영원으로 해방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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