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당한 세상이 나에게 사과하라고도 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부당함도 실상 언제나 장상성이고, 통상적이지 않은 나는 언제나 그저 자기 생각일 뿐인 거고, 결국 언제나 내가 제거되면 된다.

그러니 내 존재가 고독하게 하라.
당연히 고독한 것은 억울하고 고통스럽다. 그런데 존재의 고독은 그것과 연결되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본디 모든 존재는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에서 시작된다. 경계선이 존재다. 그것은 나라는 존재가 내가 아닌 서로의 만남으로만 이뤄지는 것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내가' 고독하면 고독을 만날 수 없다. 고독보다 나를 먼저 두려하면 오히려 나도 사라진다.
내가 고독하다 말하지만 실상은 외로운 게 두려운 것이고, 그래서 실상은 증오의 감정이다.
고독은 사실 존재의 가장 근원적 방식이기 때문에 -그것은 관계만큼 근원적이다- 내가 고독을 회피하기 위해 나를 앞세우려 하면, 정작 나 스스로가 나의 고독도, 나도 제거한다.

내가 '고독'하려면, 다시말해 존재의 고독, 나의 진짜 고독을 만나려면, 고독 자체를 마주해야 한다.
이 존재의 고독은 나홀로 억울한 고독이 아니다. 그보다는 내몰린 고독, 죽음 같은 고독에 가깝다.
그것은 근원적 공포이며, 완전한 암전이다. 절대 알 수 없는 것이며 마주할 수 없는 것이다.
고독은 그래서 오로지 기도 속에서만 역설처럼 중첩될 수 있는 것이다.

고독이 오롯이 있을 때,
비로소 내가 있고,
비로소 관계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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