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영향을 준다고 할때 매체를 통해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미디어 사회에서 그러한 영향은, 물리적으로 생활공간을 함께 하며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아니다. 실제 그가 아니라 매체를 통해 전달된 그가 있다. 그것은 그가 죽거나 살아 있거나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독자나 시청자는 일방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분명 서로 상호작용한다. 그가 죽었을 때 그러한 상호작용이 끝난다는 것에서, 그는 영향을 미치는 분명한 존재임에도 이제 그가 미치는 영향은 전혀 다른 것이 된다.

그는 이제 해석된 존재로서 남는다. 해석하는 이들이 주체인가? 아니, 어쩌면 오히려 일방적으로 해석되는 이야말로 이제는 대지나 햇살과 같이 근본적 존재가 된 것일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주체가 되는 영원한 부활의 존재일 수 있다. 그의 영향력은 세계 넘어의 세계로부터 지금여기로 완전히 스며들어 항상 새로운 나를 구성한다. 그렇기에 해석으로 존재하는 그가 오히려 이제 절대적인 주체로 부활(https://entolre.tistory.com/m/403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감각이 바로 전일성의 이해에 있어서 핵심이다. 전일성 안에서 나를 위해 죽는 동물은 자기 중심적 이기심이 아니라 경외다. 내가 약한 사냥감을 압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절대성이 나에게 쏟아부어진다. 이제 사냥은 힘자랑이 될 수 없고, 기도와 예식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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