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하나의 몸이라면, 위계적 이분법은 기작으로서 암과 같다. 세포사멸 주기를 무시하고 증식하게 만드는 어떤 기작이다. 기작이란 것 자체는 세포는 아니다. 그러나 관계적 실체를 형성한다. 면역력을 높이는 일을 통해, 그러한 기작(위계적 이분법)이 세포(개별 인간) 사이에서 전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 면역력은 다시 몸 자체에서 온다. 몸이 몸 다워지는 것에서부터 온다.

위계적 이분법은 바이러스에 비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귀화 생물은 본래 파괴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요인에 의해 관계가 깨진 것이다. 그래서 그의 특성이 더 큰 죽음으로 표현된다. 반면 바이러스는 특정 종의 내부와 연관되어 있다. 종에 따라 어떤 바이러스는 종의 사멸에 이르게 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 특정 종을 표현하는 또 다른 요소다. 특정 종 자체는 아니나 그 종만의 모습이다. 위계적 이분법은 그런 식의 작용이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암 기작이나 바이러스일 뿐, 질병인을 대상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몸이 몸 다워지는 것과, 질병인이 그다운 생활을 영위할 권리는 서로 호응한다. 질병이나 장애가 완전히 치유되어야 그다운 것이 아니다. 그가 그 다울 수 있는 관계망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위계적 이분법이 없어지지 못한 것이 실패가 아니다. 이 상황에서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는 관계망을 만들어 가는 것 자체가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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