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계적 이분법은 마치 세포막 같이 생명체가 성립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 요소다.
또한 다양성이 생길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인간은 알아서 자기가 살기 위한 위계적 이분법을 취하고,
그것이 마치 본성이라도 되는 듯 비가시화 시킨다.
그러지 않으면 애초에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인간은 이분법을 악으로 규정하지 않으면 전체 생명을 붕괴시키는 요소가 되어버린다.
이는 인간이라는 종에 있어서 문화라는 요소가 생명의 연결성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계적 이분법은 본래 악이 아니지만,
타락으로 규정되지 않으면 그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억눌리는 이들과 내몰리는 이들이 만들어지는 벽이 된다.

그래서 끊임없이 비가시화된 위계적 이분법을 다시 발견하고 타락으로 규정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악이 아닌 것이 악이 되었기 때문에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그 타락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 만큼,
딱 그만큼만, 그것이 악이 아닌 본래의 의미로 회복될 수 있다.

위계적 이분법을 해체해 가는 과정은 마치 경작과 같다.
거기가 생명이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 것이다.
해체되지 않고 남는 위계적 이분법은 언제나 타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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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한 바로 그와 동일한 이유에서, 신조로 자리잡을 수 있는 통합된 가치체계 곧 종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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