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은 사이에 존재한다.
나무와 내가 있으면, 나무나 나의 개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나와 나무의 모든 관계성 그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 영혼이란 완전히 인간적이다.
나무의 정령은 인간과 나무 중간의 모습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말을 할 것이다.
바로 이 '모습'이라는 개념부터가 이미 완전히 인간의 것이다. 인간은 오로지 인간이 인식 가능한 방식으로, 인간의 마음으로만 영혼을 만날 수 있다.

나무에게는 세상의 인식이 전혀 다르다. 빛의 밀도와 흙 알갱이 공간으로 환원되는 무언가다. 나무의 이해와 언어라는 것도 신호물질이다.
나무에게 영혼이란 것은 완전히 나무적이다.

그러나 이 나무의 영혼과 인간의 영혼은 완전히 동일하다. 그것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세계다.
인간이 나무에게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세상이다. 동일한 장면에서 나무에게는 완전히 나무가 인간에게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세계는 완전히 동일하며 그것은 인간도 나무도 인식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니, 존재의 실체는 나무나 내가 아니라, 둘이 합쳐진 하나가 그 실체라는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나도 아니고 나무도 아니다. 하나만이 존재한다. 영혼은 하나이며, 우리가 사람이기에 다만 영혼은 또한 완전히 사람답다. 완전히 사람다운 것은 완전히 나무다운 것과 동일하나, 그것은 아무렇지 않다.
다만 영혼의 세상이 진짜 세상이며, 우리는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한 영혼이란 것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림공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자림로 숲 길을 걸으면서  (0) 2020.06.16
[3획 단상] 폭력-중도-억누름  (0) 2020.06.16
[3획 단상] 죽음-난민-연대  (0) 2020.06.16
비둘기는 성령으로 나린다  (0) 2019.02.19
부랑자 예수  (1) 2018.10.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