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에 대한 얘기 중에 자진해서 목숨을 준 사냥감들에게 감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놀랐다. 명백히 자기가 죽인 생명을 나를 위해 스스로 죽었다고 하다니.
이 얼마나 인간중심적이고 끔찍한 생각인가.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잡히는 동물들이 스스로 죽는다면 우리라면 남획하는 게 당연하다.
그들이 나를 위해 죽는 거라면 그들을 돕겠다며 마구 죽일 일 아닌가.
그런데 인디언들은 그러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절제를 한다.
이것은 분명 인식의 출발점이 다른 것이다.
그들에게 생명은 나의 소유라는 개념으로 접근 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의 생명을 인식하고 나의 생명을 인식한다.
세상을 통해 나와 그가 이어져 있다. 그러한 은혜 안에 있는 것이다.
곧 '자진해서'에 담기는 것은 내가 주인이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품어주는 세상 안에서 경외와 감사의 의미로 전환된다.
우리는 그와는 달리 세상에서 분리되어 있다.
그것이 무서워 소유로 채웠다. 그리고 가진만큼 더 두려워지고 눈은 더 어두워졌다.
그러니 우리는 오해할 수 밖에. 그렇게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이 오히려 아픈 것이다.
인간중심이란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세상의 품에서 존재하는 것을 인식할 때, 인간중심은 곧 세상중심이 될 수 있다.
인간중심이란 것이 끔찍해지는 것은, 인간이 세상과 분리되어 아픔 속에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비난할 것인가? 비난은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잘못을 지적하면 변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 태도야 말로 오히려 타인을 기만하는 것일 수 있다.
인디언들을 보며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야 말로 인간이고 미국이 잘못됐다고, 파괴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야만인이라고,
그렇게 또 다시 또 다른 '분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모두는 단절되어 있으며 작아져 있다. 그러한 아픔을 가장 먼저 쓰다듬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오히려 변화는 그러한 온기를 통해 단절 속에서 이어짐을 경험하며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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