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는 남성중심주의가 아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육체적 XY는 XX를 압도할 수 있다.
이것이 폭력으로 작용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약속이 존재할 수 있다. 그건 동물로서의 인간이다.
그러나 이분법적인 강자로서 개체들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약속을 뒤트는 것이 가부장제다.
사회적 약속이라는 동물적 특성을 이용해 이분법적 개체들의 이익이라는 비동물적 시스템을 만든다.
그래서 가부장제는 동물로서의 남성을 지우고, 비동물로서의 남성으로 환원한다.
거대한 남성의 무리인 것 같지만, 무리라는 동물성이 아닌 특정 이분법으로서의 개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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