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제물로 바쳐지는 생명은, 온 생명과 이어진 하나였고, 원래라면 한 가족의 생명으로 전환되었을 것이었다.
거기에 들어있는 것은 햇살과 바람과 비와 시간과 공간이다. 신이 불어넣는 생명의 숨결, 신 자체이다.

1. 그것이 불태워지는 것은, 생명의 주권은 우리가 아니라 생명 자체인 분에게 있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이어질 생명의 순환을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의 순환이 담아내는 모습은 생명자체가 결정한다.

2. 우리는 단순히 삶의 순환 속의 살생이 아니라, 악에 의한 약탈로 생명을 부패시키는 존재들이다. 제물의 구조는 그런 우리의 본질을 표상한다. 그러나 제물이기에 악 마저도 생명 자체이신 분이 짊어지는 구조로 전환된다.

3. 그래서 제단에 토막나 불태워지는 것은 신의 주검이다.

4. 제물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온전히 전해지는 생명의 순환을 짓밟고 부패시키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무고한 이가 짊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진정으로 자신의 악을 바라보는 이는, 내가 아닌 타인의 악을 짊어지는 자리로 간다.
타인의 악을 짊어질 수 있는 곳에 성결함이 있다. 제물을 올리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현장에서 제물이 되기 위함이다.

5. 이 법칙은 내가 악한 만큼 다른 악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악함 정도와 내가 짊어질 악은 아무 관계가 없다. 타인의 악을 짊어지는 것은, 내 안의 악이 아니라, 내 안의 무고함이다.
그렇기에 더 억울한 곳으로 향하게 된다. 더 부당하게 짐을 짊어지는 사람이 있어 나도 거기에 동참한다. 그의 짐이 줄어들고, 동시에 세상에 존재하는 짐이 줄어들고, 결국은 나의 짐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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