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이라고 분류되곤하는 기독교인들이 쉽게 하는 얘기 중 하나가
"동성애가 죄인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랑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것이 성소수자 혐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접근법 같겠지만, 이런 입장의 기준은 또다시 피해받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안전한 사람들이다.

이미 "동성애"란 용어가 잘못됐다. 동성 간 성관계나 성추행은 성지향으로서의 동성애와 다른 것인데, 같은 용어로 혼용되고 있다.
그리고 동성애자 문제로 대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문제인데, 비당사자들이 편한대로 선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불공평도 사회구조적 혐오다.
'죄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죄이긴 하다'는 의미 일 수 있다. 당사자가 아니니 자기 죄의식과 상관없는 정리다. 그러나 이는 당사자들에겐 생존의 문제다. 성소수자가 죄가 아니라는 걸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겠다면, 자기 한계와 주고 있는 고통에 대해 사죄하라.
덧붙이자면, 천동설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진실이 오고 있다. 이미 온 지식이 내게 부족한 것은, 내가 당사자가 아니어서 지금의 고통에서 눈돌려도 되고 억울한 이들에게서 분리되어 편해도 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입장을 용인할 수 없다.
비당사들은 눈과 귀가 가려졌으며, 비명지르는 이들은 입이 틀어 막혀져 있다.
나는 그 사회구조 앞에 총검을 든다.

그러나 이 싸움은 배척이 아니다.
나는 그런 입장의 사람들이 사랑을 통해 시작하고 있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마찬가지다. 호모포비아들의 행동에서도 사랑에서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
그 사랑들을 안다. 그러나 사회구조가 서로를 칼로 찌르게 하고 있다.

그럼에도 칼을 버리는 게 답이 아닌 것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사회구조에 대해 우는 자의 절규를 함께 소리 지르지 않으면, 결국 좋게 좋게 동의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이는 '누가 옳고 그른가', '어떤 전략이 세련된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억눌린 자의 고통과 눈물에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칼로 찌르고 있으며, 나도 칼에 찔리고 있다. 그것이 아프지 않겠는가. 나는 칼로 찌르고 싶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그런 괴물이라고 믿게 하는 것이 사회구조의 전략이다.
우리는 영원히 찢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찢겨진 이들의 피와 살의 자리에서 언제나 평화가 찾아온다. 그것은 신비다.

그러니 눈물에 동참하는 이들에게 '그만 징징대라'고 하지 말아라. 당신들이 지금은 여기에 서있을 순 없는 것은 안다. 그것을 정죄하진 않는다.
그러나 눈물이 그치는 것은, 함께 울어주지 않더라도 함께 걸어줄 때 가능하다. 그것을 모르는 건 죄다.

이를 오해하지 말라. 내가 있는 곳만이 통곡의 자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모두에게 맡겨진 자리가 있다.
비극을 과소평가 하지 말라. 각자의 통곡의 자리를 분리시키고, 결국 서로를 칼로 찌르게 하며 피할 곳은 없다.
여성으로 인정 받는 것이 목숨인 사람과 양성 고정관념을 없에야 하는 것이 목숨인 사람이 서로를 찌른다.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화해의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의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든다. 그렇게해서 차별하는 이들은 언제나 안전하며, 피흘리는 것은 언제나 차별 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차별에 참여하여 환상의 평화를 누리도록 한다.

나는 내가 칼로 찌르는 죄를 알고 있고, 나도 점점 미쳐가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미친 세상에서 생명의 세상으로 초대될 수 있는 건, 이미 평화로워서 평화롭자고 얘기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다. 언제나 그 피흘리는 세계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오히려 진짜 평화는 그 세계에 있다. 그것이 비밀이다.

비밀이 된 평화의 세계에 버티고 있는 사람들은 사랑을 피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이 거기에 있다.
그러니 칼로 서로를 찌르는 죄를 회피하지 말며, 다만 흐르는 피와 찢긴 살을 통해 오로지 사랑으로, 오직 사랑의 세계로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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