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종북은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짜 종북이 맞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종북은 정말 문제인가'를 먼저 질문했어야 했다.
[1]
종북은 보수가 꺼낸 말이 아니라 진보 진영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나라 진보는 민주운동(민중민주, PD)과 민족운동(민족해방, NL)의 두 계열로 나눠져 있는데, 종북은 민주운동 진영에서 민족운동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이는 자신들의 민주운동은 민족운동과 전혀 다른 노선임을 말한 것이다. 다르다는 뜻이지 틀리다는 뜻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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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이 추구하는 모습은 절대 현 북한정권이 아니다. 주체사상과 현 북한정권은 동일하지 않다. 민족운동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건 현 북한정권과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그 정신을 민중연합당에서 계승했다고 본다. 이들은 탈핵을 외친다. 북정권과는 다르다. 민족을 말하나 이것이 외국에 대한 배척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이 땅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인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보면 그들의 인권감수성을 알 수 있다. 종북이 말하는 민족은 폐쇄적인 전체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풀뿌리 민족으로서의 주체성 회복이다.
[3]
종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현 북한정권에 대해 폭넓게 포용하는 태도에 기인한다. 그러나 이것이 현 북한정권 그대로를 인정하는 일과는 좀 다르다. 비교할만한 정확한 예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야권연대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다. 우파인 민주당과 좌파인 민노당이 연대한 일이 있다. 이들은 전혀 다른 노선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악이다. 절대 섞일 수 없다. 그럼에도 더 큰 악이 있었던 것이다. 서로을 찬동하가나 서로를 악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연대가 이뤄진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다. 종북에게 현 북한정권의 모습 그대로는 섞일 수 없는 악이다. 다만 그보다 더 큰 악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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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의 본질은 북한 정권의 찬양이 아니다. 일제의 민족말살 이후 제국주의가 이 땅을 단절시켰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내건 무력집단이 이 땅의 근본을 약탈해가고 있다. 그 권력자본 집단은 친미 또는 친일로 표현된다. 세계는 지금도 여전히 자본을 선두로 작은 나라의 민족 말살이 진행 중에 있다. 그러한 세계정세의 현실 앞에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계가 민족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종북이다. 종북의 본질은 중앙집권적 반세계화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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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종북의 연대 대상과 전략은 민주운동과는 다소 다르다. 민주운동의 가장 큰 적은 반민주세력이고, 민족운동의 가장 큰 적은 세계화로 대표되는 민족말살이다. 적이 다르니 민주운동이 연대할 수 없는 적과도 연대를 이룰 수 있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민주운동 진영이 차별성을 얻기 위해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분명 종북은 불편한 용어다. 그러나 처절한 한반도의 역사와 현실을 품고 있다. 종북은 상처 같은 표현이다. 마녀사냥의 피해자라고 해서 피해자가 마녀였던 것은 아니듯이, 종북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그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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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을 위해 수단을 이용하는 일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정의당은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우파진영과 타협을 할 수 있는 당이고, 진보진영 중에서도 그런 유연성은 높은 가치로 인정받기도 한다. 종북도 마찬가지다. 현 북한정권이 목적이 아니라, 그와 연대할 수 있는 수단적인 유연성이다. 종북이라는 혐오를 담은 표현은 계속적인 오해를 불러온다. 그러나 종북의 목적은 북한이 아니라 그 넘어의 민족운동이다. 적어도 정의당의 유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이들이라면, 종북 진영의 유연성을 이런 식으로 매도하는 건 전혀 정당하지 않다. 북한정권은 악하다. 그러나 종북은 나쁜 것이 아니다. 북한정권과 종북은 전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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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절대 종북을 용인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민주당과 연대하는 민노당을 용인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수단을 무시하는 목적은 진실한 것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분명 현대 사회가 종북에게 가하는 차별은 전혀 정당하지 않다.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 말은 차별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일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종북 진영의 전략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