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이상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얻게 되는 편리함들.

전기, 석유, 비닐 등등.

너무나 편하게 많이 먹을 수 있는 고기들.

너무나 싸고 넘치는 음식들, 행복들.

 

나는 도무지 그런 세상이 괴이하다.

 

고기 한 점, 지붕 아래 식구들과 누울 수 있다는 그 모든 놀라움들이 박탈되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 피어난 새싹을 기뻐하지 못하며 돈과 기술에 쾌락한다.

서로의 수고를 격려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편함을 자랑하고, 수고하는 이들을 차별한다.

 

신기를 가졌다는 사람들도, 세계적인 석학들도 그런 세상을 그다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나는 얼굴이 붉은 사람이다.

나의 피는 지금은 많이 사라져버린 이 땅의 또 다른 이웃-야생동물들처럼 붉다.

태양은 나의 수고로움에 내 얼굴을 더 붉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세상에는 얼굴이 하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붉은 색을 덮어 하얗게 만든다.

더 많이 덮을수록 더 많이 하얘진다.

 

얼굴이 붉은 사람들은 서로의 붉은 얼굴을 지적하지 않는다.

붉은 색은 다양하다. 아기의 분홍빛에서 노인의 갈색까지, 실내에서 분투하는 옅은 붉음과 밖에서 수고하는 짙검은 붉음이 있다.

우리는 서로의 다른 붉음들을 바라보고, 놀라고, 함께 웃는다.

 

얼굴이 하얀 사람들은 다르다.

더 많이 하얄수록 더 높은 등급이다.

얼굴을 더 하얗게 하면 더 높은 등급을 얻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붉은 얼굴은 수준 미달과 동일해지며, 얼굴 붉은 사람을 경멸하지 않으면 낙오된다.

 

나는 모르겠다. 얼굴을 하얗게 만드는 일이 정말 이 땅에 맞는지를.

내가 보기에 그것은 지속할 수 없는 세상이다. 땅과 햇빛은 공평하나 동시에 무한하지 않다.

얼굴 흰 사람들은 등급을 정하고 땅과 햇빛을 공평하지 않게 만든다.

그 세상은 고갈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고갈에 맞춰진 세상에서는 마음도 공허에 맞춰져 있다. 외로우며 불안하며 쾌락을 우겨 넣는다.

 

얼굴 흰 사람들은 얼굴 붉은 사람들의 땅과 햇빛도, 얼굴이 더 하얀 사람들에게 가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얼굴 붉은 사람들의 것은 이제 얼마 남아있지 않다.

이 땅의 또 다른 이웃들의 땅과 햇빛이 줄어든 것처럼, 이제 얼굴 붉은 사람들의 땅과 햇빛도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다음에는 얼굴 하얀 사람들의 차례가 올 것이다.

얼굴 하얀 사람들은 땅과 햇빛은 공평하다는 것이 얼마나 신비하고 두려운 일인지 모르는 거 같다. 모두가 함께 얻거나, 모두가 함께 잃는다.

 

봄에서 겨울로 접어들 듯, 여명에서 어둠이 찾아오듯, 빛났던 인간의 시대는 이제 저물어간다.

겨울과 어둠은 죽음의 고난을 준다. 누군가는 밤을 지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밤까지만이 허락되어 있기도 하다. 이제는 그것이 인간의 순서인지도 모른다.

하얀 빛이 찬란해지는 만큼 저물어간다. 그래서 어둠 앞의 석양은 뜨거우며, 겨울 앞의 단풍은 화려했던 것일까.

붉은 얼굴이 하얀 빛을 막지 못한 것처럼 흐름은 흘러갈 뿐이다.

 

나는 너무 이상하고, 나는 얼굴이 붉은 사람이다.

힘들더라도 붉은 얼굴로 살아가는 삶이 남겨져 있다.

겨울 중에서도 죽음을 맞이할 가장 혹독한 겨울 앞에서 썩 자신이 있지는 않다.

그래도 얼굴 흰 사람들은 각자가 분리되어 중독 속에서 그 겨울을 맞이한다면, 얼굴 붉은 사람들은 함께 모인다.

어쩌면 이 마지막이 될 겨울 앞에서 나는 얼굴 붉은 사람들과 모일 것이다.

서로의 마지막 온기들을 나누면서 함께 마지막 잠을 잘 것이다.

 

그 마지막 하나 되어가는 집에 얼굴 흰 사람이 찾아온다면 그와도 함께 할 것이다.

먼저 간 이 땅의 또 다른 이웃들과 똑같이 사실은 얼굴 흰 사람들의 피도 붉기 때문이다.

하얀 세상의 중독대신 붉어지는 얼굴을 볼 수 있게 나는 우리의 집에 빨간 등불을 피워놓을 것이다.

'생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래된 미래 (다큐, 59분)  (0) 2016.04.07
콘크리트 사이에서 만나다  (0) 2016.03.30
먹는 신비  (1) 2016.01.08
시작하는 자리  (0) 2016.01.07
저물어 간다  (0) 2015.11.0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