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교차성을 통해 연결성에 대한 바람을 갖는다.
그러나 반대로 질문을 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내몰리는 위치성에서 파악한다면, 내몰리는 위치성에서 서로가 만난다. 따라서 사소한 디테일에서 이미 연결을 추구한다. 교차성을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내몰림 속의 모순이 아닌, 배타적 타당성에 두고 있다면, 연결되지 못함이 기본값이다. 그래서 교차성이란 것으로 다시 연결을 바랄 수밖에 없게 된다.
관계로서의 정체성이 없는 것이다. 관계로서의 정체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로부터의 자기다움, 관계로부터 불러일으켜지는 자기다움이 있다.
그런 자기다움은, 다시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은 다른 정체성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다른 정체성이 자기다울 수 있게 돕는다. 늑대가 있을 때 엘크가 엘크 다울 수 있고 관계 속에 함께 모두를 지지하는 것과 같다.
자기 정체성은 순수 분리된 자기가 발견해내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 이전에 관계 속에 불러일으켜지는 것이 자기 정체성이다. 그것이 바탕이다. 자기가 발견해내는 것도 그 바탕 속에서 발견해내는 것이다.
관계로서의 정체성은 자기 행복이 아니라 고통에서 온다. 행복은 분리된 개인으로서 일으켜지는 것인 반면, 고통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의 모순과 내몰림으로부터, 곧 세상 자체와의 교감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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