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아로 인식하는 신경계로서의 자아는 사실 맛을 느끼고, 온도와 통증을 느끼는 것과 같은 신경계에 통합된 일부일 뿐이다. 자아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리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이런 자아를 포함한 온 자아를 몸자아로 부르고자 한다. 혹은 자아의 기본값을 몸자아로 하고, 기존의 자아를 심리적 자아로 부르고자 한다.
우리는 의례 심리적 자아가 존재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개체주의적 오류이자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다.
심리적 자아 역시 몸자아에 포함되는 일부일 뿐이다. 오히려 불러일으켜 지는 것, 불어넣어지는 것이다.
심리적 자아가 몸자아에 속해있다고 생각한다면, 심리적 자아가 해체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 개체주의의 함정이다.
오히려 몸자아의 인식을 통해, 심리적 자아 역시 세상 속의 자기다움으로 해방된다.
부름받음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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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심리적 자아가 있는 것이 우월한 것은 아니다. 물갈퀴가 있느냐 없느냐와 같은 어떤 종의 특징일 뿐이다. 물갈퀴가 있는 새가 더 우월한 새가 아닌 것처럼 그냥 그 종 다움일 뿐이다.
심리적 자아가 존재의 본질이 아니다. 모두에게는 몸자아가 있다. 몸자아가 존재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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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몸자아로 부름받음의 해방이 필요하다. 노동을 하듯, 공부하고 운동하듯,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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