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도 공동체도 서서히 나를 살해하고 있다고 느낄 때쯤, 내 몸과 정신과 마음에서 썩어가는 악취가 난다는 것을 느낀다.

그럴 때 그저 의무처럼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기도의 자리로 발을 옮기니 숨이 막히고 죽음이 스며든다.

그때쯤이면 환상처럼, 황폐한 대지 앞에서 그저 경작해 가야 하는 어느 나라 선조들의 삶이 떠오른다. 이 위대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 앞에서도 삶을 선택할 수 있었는가.

내 앞에 놓인 황폐한 대지를 떠올린다. 난민, 젠더 폭력, 홈리스, 인종혐오, 말 그대로 황폐해져 가는 자연, 이 신자유주의. 

가망성 없는 황폐함에 서 있는 나는, 여전히 아직 몸 뉘일 곳이 있고, 먹을 수 있는 곳이 있고, 몸도 움직인다. 그 조차 녹녹치 않은 존재들 앞에 내 생명이 그렇게 서 있었다.

분명 채념했는데도 억울하다. 왜! 대체 왜! 생명들이 이렇게 취급받아야 하는가!

경작이란 나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그 생명을 사용해서 다른 생명을 이어가는 것. 아직 두 팔과 두 다리가 움직이고, 억울한 생명들 앞에서 내 생명의 여분이 아직 남아 있다. 황폐함 앞에 다시 쟁기를 든다.

그러자 대지 위에서 위대해보이던 선조들의 모습이 사실은 나처럼 언제나 무력했고, 두려웠고, 가느다란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아. 예수는 위대하지도, 당당하지도 않았다. 사람이었다. 人子. 사람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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