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원에 육박하는 것이 요새 햄버거 세트의 가격이다. 가난하다보니 그저 나를 위해 그 정도의 것을 먹으려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큰 각오를 해야한다.
지난 달 개인 식비가 500원이었다. 나갈 돈이 많은 달이라 악착같이 주워먹고 얻어먹었다.
돈이 없다.
지하철에, 길거리에, 노숙생활을 하는 이들, 가난을 사는 이들을 마주한다.
말끔하고 아름답게 치장한 사람들 안에서, 같은 공간이지만 그렇기에 완벽히 분리되었다.
가끔씩 그 장면들이 심장을 굳어버리게 만든다. 숨이 얕아진다.
적어도 사실에 관한 것은,
내 입을 위한 한 끼가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한 여러 끼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진정 자유를 얻었을 때 선택하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따뜻한 선택지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햄버거 세트를 얻기 위해 팔아 버린 것은 우리의 강과 숲이다.
우리가 햄버거 세트를 먹으면서 팔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의 강과 숲이다.
강과 하늘은 검게 되었다. 자연의 이웃들은 사라졌다.
햄버거 앞에 검은 군침이 돈다.
가난이다.
가난하다보니 다른 이들의 부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가난이 보인다.
가난하다보니 함부로 침흘리지 않아도 된다.
생활 수준이 주변 한국 사람들 수준일 때에는 약한 이들에게 주는 1천원 2천원이 아까웠다.
가난하다보니 이제 그 돈은 10만원 20만원이 되었다.
햄버거 세트는 사라지는 숲, 입 없는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바로 그, 소리를 내지 못하는 모든 약한 존재들과 동일하다.
갖게 되는 것이 죄책감인 건 내가 그만큼 돈이 많기 때문이다.
갖게 되는 것이 행동인 건 의지력 때문이 아니라, 의외로 내가 가난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