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일로 경찰서를 갔을 때, 서류작성을 하는데 직업을 적어야 했다. 전에라면 '활동가'라고 썼을텐데.. '무직'이라고 썼다.
제대로 활동을 못하기도 하지만.. 얼마 없는 연대활동도 드러낼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어떤 성과물이 있는 일을 한 것도 없고, 사회적으로 그다지 의미 없는 삶..
각종 문제들을 다루면서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버티고 버텼지만, 망가진 상태를 견디는 것 말고는 뭘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가 됐다.

2년 전 이맘 때. 슬금슬금 무너져가던 것이 터져 오랜 시간 은둔을 하게 되었다. 그 겨울 목사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교회에서 도망쳤고 목사가 될 것을 포기했다. 여름쯤 서서히 세상으로 돌아오려고 했었으나 다시 큰 일에 휩싸였다. 무너지는 걸 견디며 여름 가을을 보냈다.

1년 전 이맘 때.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남은 것도 다 사라질 것 같아 다시 일어서려 했다. 그러나 올 봄부터 슬금슬금 일이 터지며 견디기엔 버거운 거대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졌다. 여름부터는 차라리 폭력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사라져갔다.

그렇게 12월. 모함을 당한 상처를 간신히 견뎌가는데 이제는 너무나 거대한 이별들이 기다렸다. 이미 나는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은지 오래다. 서류 작성을 할 때, 날짜를 쓰는 란이 있었는데, 올 해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 거다. 2010 몇 쯤인 것 같은데.. 검색 창에 '올해 년도'를 쳤다. 2024년이라고 뜨는 걸 보며 놀랐다. 나는 많은 것을 잃었구나.

나의 인생은 이다지도 잘못짜여진 직물이다. 미래도, 가능성도, 사회적 위치도, 나 자신도 무엇도 남은 게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씻고 보일러 튼 바닥에 누워 있는데 남은 게 없는 게 아니지.. 그리고 여러 고통을 만났다. 너무나 많은 고통을 만났다. 그렇게 고통이 남았다. 구조적 폐허와 개인적 폐허가 남았다. 망가진 몸과 마음과 정신이 남았다. 활동가가 아닌 '무직'을 쓸 수 있는 상실이 남았다. 상실 옆에 꾸준히 서왔고 그만큼 상실에 더 가까워졌다.

나는 그렇게 다시 '우리는 여기에 있다'. 기도하고, 짊어지고, 외치며, 나아간다. 언제나 앞에는 십자가가 있고, 기도가 되지 못한 기도들이 있다. 기꺼이 언제나 나는 사랑이다. 이토록 처절하게 아프고 울고 사랑하는 지구가, 망가지고 정병에 찌든 지구가 모든 걸 품고 있다.
오늘도 잠못이루는 이들과 슬픈 이들을 위로하고, 병들고 아픈 폭력으로부터의 치유가 있다. 모든 상실, 그 죽음으로 함께하며 아무도 영원하지 않은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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