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독수리의 이름은 '주금이'

묵묵히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해나갔다
죽음을 이어 생명으로
그래서 주금이는 혼자여야 했다
검정색은 외롭고 죽음이었다
그렇게 생명이 이어져갔다

2014. 6. 17.


<1>

주금이는 검은색의 독수리.

말이 없고,

언제나 혼자 다녔습니다.


"저 칙칙한 검은색을 봐."

"깃털은 왜 저렇게 허름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무튼 새들의 수치야."


말쑥하고 알록달록한 새들은 주금이와 떨어져 수근거렸습니다.




<2>


어느 들판.


"음.. 메.."


아픈 소는 마지막 숨을 쉬며 생을 마쳤습니다.

모든 이의 마지막 숨은 요정이 됩니다.


호흡이는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3>


"으악! 저건 뭐야?"


호흡이의 주변에 있던 흙의 요정들이 말했습니다.


"고약한 냄새. 너무 싫다."

"생긴 건 또 왜 저래?"

"야. 야. 저기로 떨어지자."


처음 본 친구들에게 반가웠던 만큼

호흡이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습니다.


"……"


슬픔으로 가득찬 마음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4>


그저 멍해져 있는 호흡이의 옆에

주금이는 조용히 다가와 서있었습니다.


호흡이는 기대하지 못했던 인기척 보다

처음 느끼는 온기에 더 놀랐던 것 같습니다.


"아저씨. 저는 이렇게 냄새나는 곳에 살고 있고, 이렇게 이상하게 생겼는데, 제 곁에 있어도 괜찮아요?"


"……"


주금이는 가만히 호흡이를 안아주었습니다.




<5>


'꼬옥'


호흡이는 작은 손을 뻗어 주금이의 품 속에 안겼습니다.


주변에 있던 지저분한 때들이 주금이의 깃털을 거무튀튀하게 물들이고 헝클어 놓았습니다.

주금이는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호흡이의 가슴에는 따뜻하고 울 것 같은 무언가가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6>


"아저씨, 고마워요."


호흡이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아니. 이제는 초록이라고 해야겠네요.


초록이의 미소 주변엔 풀밭이 펼쳐져 갔습니다.


"……"


주금이는 말이 없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초록이는 주금이의 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7>



"얘, 너 너무 얘쁘다."


흙의 요정들이 초록이에게 다가왔습니다.


"와~ 여기 너무 좋다."


알록달록한 새들도 함께 모였습니다.


따뜻함으로 가득 찬 마음은 모두를 받아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두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검은색 주금이는 말이 없고,

언제나 혼자 다녔습니다.




끝.

'그림공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 시간  (0) 2015.10.30
6월의 숲  (0) 2015.10.30
빗소리  (0) 2015.10.30
폭력의 내면  (0) 2015.10.30
바하밥집  (0) 2015.10.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