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원시적인 의미의 선이라는 개념이 있다.
곧 인간 자체가 선이라는 영역이다.
한 사람에게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개념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다.
의미나 개념 이전에, 세상과 개체 모두가 섞여있는 영역에 있는 것이다.

근본적인 인간 선에서는 모순과 찢겨지는 갈등이 존재한다.
용서할 수 없는 인간인데 선한 것이다.
싸이코패스 살인자가 선하다고 하는 영역이다.
내가 아는 정의롭고 선한 사람이 누군가를 죽였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오히려 죽인 사람이 피해자일 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살해당한 그가 악당이었을까?
곧 섞여있고 원시적이며 근원적인 선이다.

그러한 선함은 그 안에서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비명이 질러진다. 갈갈이 찢겨진다.

[2]
더 원시적인 의미의 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마음이 지쳐서 끊이지 않는 눈물 속에서 우리는 외친다.
엄마… 엄마…

그러한 신이라는 것은 백일 기도의 대상일 수 없다.
그보다 더 원시적이다. 신이라는 개념이나 단어 이전에 존재한다.

개념이나 의미로 설명할 수 없다.
내 생명의 주체가 내가 아니라 그 엄마에게 회귀한다.
그럼에도 오히려 거기에서, 내가 만든 거짓된 나의 생명이 아닌 진정한 나의 생명을 마주하게 된다.

모든 그 ‘엄마…’다. 그것은 개체 너머에 있다.
선과 악이 무엇이어서, 정의가 무엇이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엄마…’ 자체가 생명의 주체임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삶이 되는 것이다.

괴로움이 칼로 자르듯 선과 악으로 갈라지지 않는다.
비명은 질러져 나온다. 그러나 무엇도 갈라낼 수 없다.
오로지 눈물이다. 엄마를 부른다. 어쩌면 나는 움직이게 되는 몸일 뿐, 있는 것은 그 엄마다.

[3]
모든 나의 지혜와 직관, 판단이 갈라내기 전에,
나의 모든 일 앞에서 그 엄마를 구할 수 있는가.

생은 피와 같은 과정이다. 그 엄마를 찾는 시간을 나의 하루 속에 두어서, 해가 지고 해가 지는 일처럼 그 얼굴을 구하는가.

그 엄마를 구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 엄마를 구하는 일은 사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엄마를 구하는 그 눈물을 만나는 세상 속 생명들 때문에 나도 함께 소리지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 엄마를 구할 수 밖에 없는 생명들을, 찾아가는 생활을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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